메뉴 닫기

세례 요한,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침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다. 동시에 신약시대의 시작을 여신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엘리야’였다고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 그는 누구이며 엘리야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엘리야, 세례 요한, 공통점
엘리야(왼쪽)와 세례 요한(오른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애

하나님이 보내심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무거운 세금과 학정(虐政)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야’가 등장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다만 메시야가 등장하기 전에는 한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메시야의 길을 미리 예비할 ‘엘리야’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말라기 3:1, 4:5~6 참조). 그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자 먼저 나타난 ‘엘리야’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한복음 1:6~8

탄생

세례 요한의 부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이며 모친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었다.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와 친척 관계였다.

어린 시절의 세례 요한,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Bartolomé Esteban Murillo, 세례 요한
어린 시절의 세례 요한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作

엘리사벳은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아이를 갖고 싶어 늘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남편이었던 사가랴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가랴가 이를 믿지 않았던 탓에 그는 요한이 태어나기 전까지 입이 닫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요한이 태어나자 자연히 사가랴도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가랴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당시 요한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하려 할 때, 주변의 친척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 할 때 엘리사벳이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친척들이 사가랴의 의중을 알고자 아직 말을 못하던 그에게 서판을 전달했는데, 그도 서판에다 아이의 이름을 요한으로 명명한다고 쓰자 그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다고 한다(누가복음 1장 참조).

세례(침례)를 베풀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는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마가복음 1:1~8

그는 많은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했고, 또 많은 이들이 제각각 자신이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를 세례 요한에게 물었다. 그는 세리들에게는 “정한 세금 외에는 징수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군병들에게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의 받는 봉급에 만족하라”고 일러주는 등 회개의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상세히 답변해주었다. 하지만 바리새인사두개인 등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를 받으려 할 때는 질책과 저주를 쏟아냈다. 앞서 열거한 이들과 달리 세례를 받으려는 그들의 행위가 형식적인 겉치레에 불과함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마태복음 3:7~9 참조).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베풀다,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베풀다 –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作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회개를 종용하고, 또 당대의 기득권이었던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메시야와 엘리야에 대한 예언을 알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에게 직접적으로 그의 정체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메시야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밝히 말했다. 그럼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요한복음 1:23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세례 요한이 선지자 이사야의 발언을 인용하여 자신의 정체를 설명한 것이다. 그가 이야기한 구절은 이사야 40장 3~5절로써, 하나님의 길을 예비할 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길을 예비할 자’는 다름아닌 엘리야이므로(말라기 3:1, 4:5~6 참조), 결국 “내가 엘리야다”라는 말을 에둘러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루시는 역사는 이처럼 성경을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과의 만남

요한은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의 복음시대를 여시는 믿음의 주체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는 이전부터 자신이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세례 요한도 자신이 증거해야 할 ‘메시야’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다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머리 위에 머무는 이를 보면, 그가 바로 메시야일 것이라는 정도만 알았다. 그 메시야를 기다리며 요한은 계속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드디어,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와 신약시대를 여는 구원자가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이 성사되었다.

침례, 성경구절, 마태복음 3장 13절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이시라고 분명히 증거하였다. 메시야를 증거하는 엘리야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죽음

이후 세례 요한은 분봉왕 헤롯이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일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헤롯이 그것 외에도 몇 가지의 누명을 더 씌워 그를 잡아 감옥에 가뒀다. 헤롯은 당장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민중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고 있어서 반란이 날까 염려가 돼서였다.

그 무렵 헤롯의 생일을 맞아 잔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춰서 헤롯을 기쁘게 했다고 한다. 그때 헤롯은 그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다 줄 터이니 소원을 말하라 했는데, 아마 아이가 빌 소원이라는 게 기껏해야 얼마나 크겠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는 요망하게도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고, 당돌하게도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을 그대로 전했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헤롯은 아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맹세한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었고 잔치 자리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근심 끝에 헤롯은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말았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는 그렇게 생을 마쳤다.

헤롯 앞의 세례 요한, 마티아 프레티, Mattia Preti
헤롯 앞의 세례 요한 –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 作
결국 이 사건이 죽음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엘리야와의 관계

세례 요한을 엘리야에 빗대서 설명한 부분이 성경에 상당히 많은데, 요한과 엘리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1. 예수님의 증거

예수님께서는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13~14

이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앞서 설명했던 말라기 3장과 말라기 4장 5~6절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메시야의 임재(臨在)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그 길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성경에 예언된 엘리야라고 증거하신 이면에는 사실 한 가지의 메시지가 더 숨어 있다. 성경의 예언에 따르면 엘리야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야 하는데, 요한이 증거했던 인물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을 엘리야로 증거하셨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메시야다”라고 드러내신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제자들 중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산상수훈, 카를 블로흐, Carl Bloch
산상수훈 – 카를 블로흐(Carl Bloch) 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당시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본 이들은 거의 없었다.

2. 약대 털옷과 가죽띠

또한 세례 요한의 외형을 통해서도 그와 엘리야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약대 털옷과 가죽띠를 하고 다녔다. 그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싶겠지만, 바꿔서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별 것 아닌 내용이 왜 ‘구원을 위한 책’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합리적 의문도 가질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엘리야 역시 요한과 마찬가지로 털옷과 가죽띠가 그의 ‘시그니처 마크’였다.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아하시야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진 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완쾌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묻고자 사자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왕의 명령을 수행하러 가던 사자에게 한 선지자가 나타났다. 그 선지자는 “바알세붑에게까지 갈 필요 없다.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의 신을 의지했으니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저주했다. 사자가 그 말대로 왕에게 돌아가 이 말을 전달하자, 왕은 그 말을 한 선지자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이때 바로 그 선지자, 엘리야의 시그니처 마크가 등장한다.

“그는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디스베 사람 엘리야가 틀림없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1:8

아하시야왕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둘렀다’라는 인상착의만 듣고도 그 선지자가 엘리야임을 알아챘다. 이처럼 엘리야의 증표는 털옷과 가죽띠였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털옷과 가죽띠를 한 것은 그것밖에 의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엘리야의 사명을 가진 자라는 알려주는 중요한 증표였던 것이다.

세례 요한, 그가 못다 이룬 예언

요한은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왔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지는 못했다.

1.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 직전에 나타나야 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1, 5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는 다시 임한다.

사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의 등장 시기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기 전이다. 이날은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를 다 불에 사르는 날이며,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리는 최후의 심판 날이다. 이 최후의 심판이 이르기 직전에 엘리야는 등장해야 하지만, 세례 요한이 등장한 이후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은 아직 불에 타지지 않았고 온 인류는 뿌리와 가지를 막론하고 건재하기만 하다.

2. 아비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에게 돌이켜야 함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라기 4:6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킬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대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과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의 마음이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돌이켜지는 방법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옛날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왕 당시, 그는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자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하게 되었고 나라 전역에서 우상을 전멸시켜 하나님께 그 마음을 온전히 드릴 수 있었다(열왕기하 23장 참조).

하나님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서로에게 돌이키는 역할을, 엘리야는 해야 한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마음을 드리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인지 이방 잡신인지 결코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유월절을 지켰을 때는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향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서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엘리야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온전한 예언 성취가 되려면 세례 요한이 유월절도 전파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회개의 침례에 대해서만 교훈할 뿐이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는 유월절의 신비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결론

엘리야의 사명은 2천 년 전에 마쳐진 것이 아니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기 전에 다시 그 사명을 누군가가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증표는 유월절이다. 잃어버렸던 유월절을 복구할 그는 털옷과 가죽띠로 자신의 정체를 은연중에 드러내실 것이다. 과연 마지막 때에 등장하실 엘리야는 누구일까? 성경을 심각히 연구해야만 그 답을 알 수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