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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포도원 사건 속에 숨은 이세벨의 계략

나봇의 포도원(Naboth’s vineyard)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B.C. 873~851)이 탐했던 포도원이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단순히 아합의 탐욕과 이세벨의 사악함을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 속에는 장차 교회가 당하게 될 예언의 의미가 담겨 있다.

나봇의 포도원

아합의 욕심, 완강한 나봇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전쟁이 끝난 뒤의 일이다. 아합왕은 뜬금없이 왕궁 근처의 한 포도원이 너무나 갖고 싶어졌다. 게다가 그 포도원을 포도원으로 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나물밭’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참 알다가도 모를 심리였지만 그 포도원은 주인이 있었으니. ‘나봇의 포도원’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포도원의 주인은 나봇이었다.

아합왕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상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은 팔 수 없었다(레위기 25:33~34). 나봇의 포도원 향한 아합왕의 욕망은 율법에도 저촉되는 만큼 언감생심이었지만, 그래도 그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어 아합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이런 이야기 탓에 영미권에서는 ‘꼭 손에 넣고 싶은 물건’을 ‘나봇의 포도원(Naboth’s vineyard)‘이라 부른다고 한다.1

나봇의 포도원, Naboth's vineyard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포도원이었기에,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한 것일까?

이세벨의 계략, 그리고 나봇의 죽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세벨은 “내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선물할 테니, 이제 식사를 하시라”며 호언장담한다. 그녀가 꾸민 계략은 이러하다. 이세벨은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 성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히라고 전했다. 그 후 불량배 두 사람을 그리로 보내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말을 하면, 백성들이 나봇을 죽일 것이라는 사악한 계획이었다.

장로들과 귀인들은 편지에 기록된 대로 진행했고, 백성들은 불량배들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서 돌로 쳐서 죽였다. 나봇이 죽은 후 아합왕은 손쉽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속에 담긴 예언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디모데후서 3:15~16).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는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토록 자세히 서술하고 있을까? 물론 역사에 대한 서술의 목적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성격도 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전도서 3:15

나봇의 포도원 사건 속에 담긴 예언을 이해하려면 먼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과 이세벨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합은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의 왕이었고 이세벨은 바알 즉 태양신을 섬기던 나라의 공주였다. 그런 두 사람의 혼인은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장차 태양신 숭배 사상을 받아들일 것에 대한 예언이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가 태양신 숭배 사상을 받아들인 것을 ‘이세벨을 용납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20

예언의 성취

실제 이 예언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사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차츰 예수님의 가르침을 버리기 시작했다.

교회는 차츰 세속에 굴복하고 처음의 신앙을 잃어갔다.

밀라노 칙령

당시 교회는 로마로부터 오랜 세월 핍박을 받아 왔다. 오랜 세월 강요된 인내는 괴로운 것이었고, 인내 끝에 얻은 자유라는 열매는 너무나 달았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비로소 교회를 향한 핍박은 멈췄다. 핍박만 멈춘 것이 아니라 교회는 국가로부터 박탈당했던 재산을 모두 돌려받았고, 심지어 성직자들의 경우 세금까지 면제받았다.2 무덤에 숨은 채 찬송가도 숨죽여서 불러야 했던 이전의 역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마치 나봇이 하루아침에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은 것처럼, 교회는 갑자기 로마에서 높아져서는 어마어마한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목숨 같은 진리를 잃다

그리고 321년, 콘스탄틴 황제는 ‘일요일 휴업령’을 반포함으로써 로마의 모든 시민들이 ‘존엄한 태양의 날’인 일요일에 쉬도록 의무화했다. 이러한 조치는 토요일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교회에 결정타가 되었다. 교회 안에서 안식일이 변개된 역사에 대해서는 ‘안식일 폐지 후 주일로 대체? – 주일의 유래’라는 포스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진리의 변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새 언약 유월절이 폐지되었고, 354년에는 태양신 미트라의 축일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둔갑시켰다. 431년에는 이교도의 우상인 십자가가 교회의 예배당에 들어오고 말았다. 교회가 세속에 빠져서 처음의 고결함을 잃어버리자 이교도의 규례들은 물밀듯이 교회로 밀려들어왔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절기는 목숨처럼 중요한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통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절차가 존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절기’다.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를 어기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설령 제사장이라 해도 죽임을 당했다(레위기 10:1~2). 구약시대에 엄격하게 절기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이유는 그 절기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시고자 함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가 절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졌고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뿐 더 이상 그 교회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교 암흑시대
교회는 진리를 잃고, 어두움의 권세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결론

나봇의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재산이었다. 그 소중한 것을 빼앗기 위해서 이세벨은 나봇을 높은 위치에 앉힌 뒤 죽였다. 이러한 역사는 그림자로써,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초대교회가 어떻게 태양신 숭배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십자가 처형도, 맹수의 위협도 모두 견뎌내었던 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었다. 그런데 이런 박해를 받던 교회가 돌연 국가의 인정을 받고 지위가 격상되자 이전의 고결함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진리를 잃어버린 채 너무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오늘날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름은 당연하거니와, 더 나아가 교회 안에 절기가 없는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위는 이세벨을 용납하는 행위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행위다. 절기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키고자 애쓴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을 깨닫는 지혜를 다시금 허락해주실 것이다.

  1. USA is a type of Naboth’s vineyard. (미국은 꼭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나라다.)
  2. 출처: 세계 교회사 걷기(46~47페이지, 두란노서원, 임경근 著,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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